심준보 보차 대표 "茶는 오래되면 더 깊어지죠, '시간의 세례'를 받는 것처럼"
중국茶 전도사 심준보 보차 대표
여의도 애널리스트로 10년 中 저장성 지인 만나 전업 "성장 포화상태 커피 대신해 사람들 곧 차로 전향할 것" 책장에 꽂아두는 차 출시도

윈난성 호도협에서 포즈를 취한 심준보 대표. ⓒ심준보
중국 차(茶)를 한국에 소개하는 보차(BOCHA)의 심준보 대표(51·사진)는 잔뼈가 굵은 증권사 애널리스트였다. 베이징대 MBA 과정을 밟던 어느 날 중국 차의 새 맛을 발견했다.
"중국 차의 첫인상은 저도 별로였어요. 약이라면 모를까 왜 마시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저장성에 사는 지인이 건넨 차 한잔을 마시고 삶이 바뀌었습니다. '아, 이거다' 싶었어요."
식전이든 식후든 커피가 하루의 리듬을 좌우하는 현대사회에서 "커피의 시대는 저물 것"이라고 확신하는 심 대표를 최근 이메일과 전화로 만났다.
보통 사람들은 중국 차를 한 입 삼키면 내심 고개를 젓게 된다. 쓰고 떫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수십만 원 내지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고급 차를 즐길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그러나 심 대표는 "비싼 차만 맛이 좋은 게 아니라 중국 차는 원래 달다"고 주장한다.
"영국 티는 설탕을 넣어 먹습니다. 차는 향만 책임지고 맛은 설탕으로 채웠던 것이죠. 차는 설탕 없이도 마셨습니다. 중국 차는 달콤하거든요. 당분이 아니고 아미노산 덕분이에요. 와인에 보디감이 있다면 차에는 터치감이 있습니다. '쓰다'는 건 건강하지 못한 차가 만든 편견입니다."
편견은 왜 생겼을까. 중국 차의 수입 경로는 두 가지다. 정식 통관이거나 중국 다이궁(代工)이거나. 보따리상으로 들여오는 차는 맛도 질도 신뢰하기 어렵다. "차 맛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잎에 밴 맛을 '깎아낼' 수 없으니 제초제를 쓰면 쓴맛이 그대로 나옵니다. 다이궁이 몰래 들여오는 차 대부분이 그래요. 저품질 차를 선물받으면 찬장에 쌓아만 두게 되죠. 정식 통관되면 식약처 잔류농약 검사가 필수여서 쓴맛이 없습니다."
커피보다 차가 우위를 점하리란 예측은 또 왜일까. 심 대표는 "사람들이 카페인이 적은 대체재로 차를 선택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과거 여러 브랜드가 경합했지만 이제 스타벅스 중심으로 재편됐고, 이디야나 빽다방 같은 '가성비' 브랜드도 유행이죠. 시장 양극화는 성장 정체 시의 전형적 현상입니다. 사람들은 대체재를 찾을 겁니다. 가능성은 높아요. 훠궈, 양꼬치, 마라탕 전문점이 요즘처럼 유행하리라고 10년 전에 상상이나 했었나요."
코로나19로 올해는 출국이 불가능했지만 작년엔 푸젠성과 윈난성의 험지로 차 여행을 자주 다녔다. 한 번은 3200년 된 차 나무를 만나기도 했다.
"윈난성 펑칭현에 위치한 차나무 선조였어요. 10m 높이가 놀라웠습니다. 보이차는 윈난성, 홍차는 푸젠성에서 자라는데 윈난성은 히말라야산맥 줄기에 자리 잡고 있죠. 푸랑족(族)과 함께 차와 술을 나눠 마시고 전통춤을 췄던 기억까지 생생합니다."
그는 홍차 종류인 '전홍'을 가장 즐긴다. 수령 200년짜리 나무에서 생산되는 품종이다. "오렌지맛도 나는데 맛이 현란하고 다채롭죠. 중국 차는 대개 보이차를 대표라고 생각하시는데 홍차, 백차, 청차 등 여러 가지예요. 편견을 깨면 더 맛있는 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장 애착이 가는 보차 제품은 뭘까. 그는 "1년이면 좋은 차, 3년이면 좋은 약, 7년이면 보물"이라는 백차를 마치 책 모양으로 담은 '북패키지'를 꼽았다. "홍콩에서 1990년대 초에 수십 년간 버려진 창고에서 차가 발견됐는데, 가격이 상상을 뛰어넘었습니다. 차는 오래될수록 시간의 세례를 받아요. 10년, 20년 지나면 맛이 황홀해집니다. 백차를 책꽂이에 꽂을 수 있는 형태로 만들었어요. 아기가 태어났을 때 사두셨다가 책장에 꽂아두시고 먼 훗날 열어보시라는 의미였어요. 인생이 차와 함께 흘러가는 거죠."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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